박선영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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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3월 청주제일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대하고 신사참배 및 궁성요배(宮城遙拜) 등을 기피하기 위하여
동지들을 규합했다. 1942년 5월 5일 개교기념일 때 전교생이 와우산(臥牛山)으로 등산·행군하던 중에 일본의 패전을 뜻하는 노래를 부르다
청주경찰서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 사실을 밀고한 일본인 동급생 사와다 미사오(澤田操)를 구타해 4주간 치료를 받게 만들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2년 12월 11일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상해죄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43년 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5월 17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이후 청주에서 평범하게 지내다 2009년 1월 31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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