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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합동 추모최규하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제10대 대통령

1919년 7월 16일 - 2006년 10월 22일 (향년 87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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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崔圭夏, 1919년 7월 16일~2006년 10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의 2번째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었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현석(玄石)이다.

1945년부터 경성사범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 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됐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농림부에서 근무하다가 외무부로 발탁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말레이시아 대사로 임명된 후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하기도 했으며 귀국 이후 1967년에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1967년 제22차 UN 총회 수석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왔다. 외무부 장관 재임 시절에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면서 외무 행정 조직의 강화를 꾀했고 통상 외교를 강화했다. 197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취임해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 되어 평양에 다녀왔다. 대통령특사로 7회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티오피아 등 24개국을 친선 방문했다.

1975년 12월 19일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고, 1976년 3월 13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됐으며, 1979년 3월 국무총리로 재신임됐다.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10월 27일부터 1979년 12월 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1979년 12월 6일부터 1980년 8월 16일까지 군부 실권하의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의 계엄을 내림

짧은 재임 시기에도 불구하고 재직 동안 여러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재직 초반부터 하나회가 반란을 일으켜 군부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이듬해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가 터지기도 했다. 서울의봄 이후에도 계속 통치하다가 1980년 8월 16일 대통령 직에서 퇴임했고 퇴임 후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가 잠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영어를 가장 능통하게 구사한 인물은 이승만 다음으로 최규하가 꼽힌다.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리(현,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836-2에서 최양오(崔養吾)와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양오는 학교 훈도를 역임했고, 잠시 원주군 원주면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최재민(崔在民)은 1897년 성균관박사를 역임했다. 박사는 조선의 관직 명칭이었으며 그의 집은 할아버지가 성균관박사를 역임한 이유로 최박사댁이라 불렸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한학자였던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워 〈동몽선습〉·〈효경〉 등을 시작하여 〈소학〉·〈논어〉·〈맹자〉·〈대학〉·〈중용〉·〈통감〉 등을 읽었다.

1928년 3월 10세 때 원주보통학교에 3학년으로 월반 입학했다. 1932년 2월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에게 문과 예절을 배우는 가정학습은 계속되었다. 1932년 3월 30일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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