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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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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1956년 8월 31일 - 2018년 7월 23일 (향년 61세)추모소 개설:2020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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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님을 추모합니다.

노회찬(魯會燦, 1956년 8월 31일 ~ 2018년 7월 2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정계 입문 이전에는 인천 지역 노동자들의 연맹을 창설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7·19·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강화이며 부산 출생이다.

1982년 용접 기술을 배워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3년 수감되었다. 이후로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였으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서울 노원구 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에 출마해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3년 독수독과이론에 의거해 의원직을 퇴직당했다가 명예회복을 위해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서울 동작구 을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게 석패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해 해당지역 현역의원인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원외에 있을 때에는 유시민, 진중권과 함께 팟캐스트 방송 《노유진의 정치카페》 진행자로 활동하였다.

2018년 드루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7월 23일 오전 9시 38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한 아파트의 17층과 18층 사이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어머니 원태순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며, 교사를 하던 중 전쟁이 터져 1.4 후퇴 때 거제도로 피난한 후 함경남도가 고향인 아버지 노인모를 만났다. 노회찬은 1956년 부산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시절부터 첼로를 배웠으며 고교시절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축제에 초청을 받고 첼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한 해 개봉영화를 모두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중학시절부터 펜싱과 육상에 뛰어났으나, 구기종목은 전혀 하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또 고등학교 2학년때 무술을 잘한다고 학내에 소문이 퍼져 노지심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여 1973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삶을 보냈다. 경기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3년,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하고 배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씨알의 소리》, 《다리》와 같은 잡지를 읽게 되었고, 함석헌, 백기완, 선우휘 등 저항적 지식인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경기고에서 함께 운동을 했던 동기들이 정광필, 이종걸 등이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입시에 떨어졌다. 노회찬은 재수를 하지 않고 바로 군대를 지원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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