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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합동 추모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1921년 11월 3일 - 2020년 1월 19일 (향년 98세)추모소 개설:2020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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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님을 추모합니다.

신격호(辛 格浩, 일본명: 重光 武夫 (しげみつ たけお) 시게미쓰 다케오[*], 1921년 11월 3일 (음력 10월 4일) ~ 2020년 1월 19일)는 롯데그룹을 창업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일제강점기 무일푼으로 도일하여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창업한 롯데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주다. 롯데 홀딩스 명예 창업 총괄회장, 한국 제5위 롯데의 총수. 일본 프로 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와 한국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오너도 역임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의 거품 경제 시대에는 미국의 포브스 선정 세계 3-4위의 부호가 되어 한국인 사상 최고의 부호 기록을 달성하였다.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모국 대한민국을 위한 그의 평생 숙원이었던 롯데월드타워의 꿈은 2016년에 실현하였고, 2020년 소천하였다. 그의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TOP 5 안에 들어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되었다.

1921년 경상남도 울산군 삼동면 둔기리의 영산 신씨 집성촌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진수는 재력이 있었으나 그의 친척에 의하면 신 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 자랑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거들다가 면장을 지낸 백부의 도움으로 2년제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 국립 종양장’의 연수생으로 지냈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하였다. 1946년 와세다 고공(高工) 야간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일본에 가기로 결심하고 부관연락선의 밀항선으로 몸을 싣는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뒤 껌 사업에 뛰어들었고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1950년 재일한국인이 많은 신주쿠구 신오쿠보에 껌공장인 롯데 신주쿠공장을 설립하였다.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애드,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되었다. 1972년 사이타마 현 우라와 시에 롯데의 제과공장단지인 우라와공장을 설립하고, 1973년 니시신주쿠에 롯데본사빌딩을 건립하였다.

1988년 일본의 부동산버블로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 순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버지 신진수는 1968년경 고향을 떠나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서울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1969년 사이 울산국가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암댐(69년 12월 준공)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수몰, 신씨 일가 40여 가구가 이주하면서 대부분 흩어졌고 이때 선진수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마을이 수몰되자 그의 친ㆍ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이를 아쉬워한 신격호는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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