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현(盧載鉉, 1926년 8월 8일 ~ 2019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공무원이다. 제21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호는 석봉(碩峯)이다. 경상남도 마산 출신이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육군대학, 국방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52년 육군 제1포병단장, 1954년 제 25사단 포병단장을 지냈다. 1956년 육군포병학교 교장, 1957년 제30사단장, 1960년 제7사단장, 1962년 육군본부감찰감, 1964년 육군 군수기지사령관, 1966년 제2군단장, 1969년 육군참모차장을 지낸 후 1972년 제20대 육군참모총장, 1975년 제14대 합참의장을 지내다가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그 뒤 1977년 제21대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일제 육군에 복무한 경력이 없는 최초의 참모총장이었으며,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장관직을 연속으로 맡았다.
1981년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991년 제2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에 선출되었다.
1948년 강원도 양양군 기사문리에서 38선을 침입하여 방화, 약탈, 납치 등 북한군들의 만행이 빈번하게 일자, 당시 포병중대장(중위)으로서 방향포경 없는 105mm 대포(미군이 한국군의 단독 전투행위를 견제하고자 포경을 지급하지 않음)를 직접 조준하여 북한군 초소를 격파하였으며, 이것이 최초의 실전 포 사격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6.25전쟁 시 봉일천 전투, 영덕포항 전투, 춘천가평지구 전투, 인제원통지구 수복작전, 속초351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1978년 국방부장관 재직 시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으며, 당시 미국방부장관은 헤럴드 브라운 박사였다.
1979년 10.26사태 당시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사건의 범인임을 알아차린 직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체포지시를 하였고, 익일 새벽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79년 12월 12일 일부 군 지휘관들이 군의 지휘계통을 무너뜨리고 하극상을 단행한 12.12 군사반란은 군 내부의 갈등구조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 군의 총 책임자로서 아군끼리의 유혈충돌만은 막고 수습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대통령이 재가하도록 하였다. 그 직후 군 내부 소요사태 발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직에서 물러났다.
1979년 당시는 10.26 사태로 인해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 상태였으며, 전국계엄이 아닌 지역계엄이었다. 전국계엄은 대통령이 직접 통제하게 되어 있고, 지역계엄은 국방부장관의 통제를 받는다. 갑작스런 대통령 부재에 의한 권력 공백지대에 군의 동향에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계엄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여, 국가위기 극복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국가비상 상황으로 전군의 방어태세 확립과 주한미군의 보다 강력한 경계가 요구되었던 국가안보상 매우 엄중한 시기였다. 또한, 정부 각 부처는 계엄관련 업무는 물론 일반 업무까지도 계엄사에 문의하는 일이 빈번했다.
장관은 우선 한미연합사로 갔다.
추모합니다
분향함을 클릭하여 향을 꺼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