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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두
합동 추모김일두 법조인

김일두 법조인

1923년 9월 28일 - 2013년 5월 28일 (향년 89세)추모소 개설:2020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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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두님을 추모합니다.

김일두(金一斗, 1923년 9월 28일 ~ 2013년 5월 28일)은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역임한 법조인이다. 부인 최지엽과 사이에 아들이 4명(두원실업 대표 김상수, 대한정밀 대표 김상영, 자영업을 하는 김상국)이 있다.

1923년 9월 28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서 합격했다.

1950년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어 대전지방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재직하였다.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있던 1962년 9월 14일부터 "시내에서 소환을 받은 증인에게도 일당 100원을 지급한다"고 밝히면서 "증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반면 올바른 증언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는 시외에서 소환된 증인에게만 일당과 여비를 지급했다"고 했다.

1964년 10월 20일 인혁당 사건으로 인해 항명 파문이 생기면서 서울지방검찰청에 차장검사 2명을 두는 새로운 정원령이 마련되어 김일두는 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인사 이동되었다. 이후부터 차장검사가 각 부를 지휘하게 되었다.

1965년 유옥우 집 연쇄폭파사건을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일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을 때 발생한 영부인 육영수 저격 사건에서 수사본부장을 맡아 수사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으며 이때 능력을 인정받아 2년 6개월이라는 비교적 오랜 기간 지검장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되면서 청소년 범죄자 가운데 가정이 있는 자로서 죄질이 약하거나 초범인 경우에 부모의 각서를 받고 기소유예 또는 훈방 처분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과 관련하여 훗날 변호사 개업한 이후에 "범인인 문세광은 검거 초기 `전투하여 승리한다`는 북한식 문구를 사용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사형 전에는 `육영수 여사에게 사죄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대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물러나면서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1981년 극동빌딩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던 김일두는 1만 5천회 무료 변론을 하면서 난, 수석 뿐만 아니라 한국 8mm 사진동인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소형 영화촬영에서도 취미를 가졌으며 1970년 4월 28일에 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를 맡은 자신처럼 문학을 좋아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 19명(회장 이항녕, 간사 한승헌 회원 백종무 김준수 이범렬 나석호 박천식 홍성우 가재환 김일두 이동봉 김용환 박찬종 백두현 황산덕 홍현욱 박승서 권순영 이병용)이 모여 법조 문우회를 만들었던 김일두는 1970년 6월에 20년 법관 생활동안 법의 세계에서 보고 느낀 얘기들을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발표한 '청탁과 답술' '감방 벽서' '도장 인생' '내직업의 변' 등의 수필을 묶은 수필집 《알몸 인간》을 출판하고 1983년 9월에는 《낙조는 불탄다》라는 저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1965년 4월 이란 테헤란에서 세계인권선언 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국제인권대회에 파견되기도 했던 김일두는 1990년 4월 23에 재일 한국인 처우개선을 위한 제언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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