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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합동 추모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1922년 7월 2일 - 2009년 2월 16일 (향년 86세)추모소 개설:2020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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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님을 추모합니다.

김수환(金壽煥, 1922년 7월 2일~2009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다. 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로마교구의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 성당' 명의주임 사제직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며, 본관은 광산, 아호는 옹기이다.

군사 정권 당시 민주화 운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하였으며, 재벌에 반대하는 발언,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사회 운동과 방송 활동, 복지 사업, 언론 활동, 강연 활동 등을 하였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수십년간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과 공동선의 추구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신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2024년 6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다.

김수환은 대구 도심인 남산동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수환의 할아버지인 김익현은 천주교를 신봉하다가 1868년에 발생한 '무진박해'로 인해 연산에서 관군에게 잡혀 순교하였을 만큼 집안이 대대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무진박해'로 아버지를 잃고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 김영석은 박해를 피해 살던 고향을 떠나, 다른 신자들처럼 옹기장수로 전국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1895년경 서중하와 결혼하였다.

어머니 서중하는 가난한 옹기장수인 김영석과 결혼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으나 자식들 앞에서는 한 번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여덟 명의 자녀가 전부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넷째 형 김동한과 김수환 2명만이 그 꿈을 이루었다. 김수환은 4세때 군위로 이사했으며 8세에 군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보통학교 1학년 재학 중 아버지 김영석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서중하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며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 그러나 김수환은 생전에 회고하기를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에 엄하셨지만 먹는 것, 입는 것은 마치 부잣집처럼 해주셨다. 그 대신 사치란 있을 수 없었고 심지어 엿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도 할 수 없었다."라고 회고하였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상인이 되는 것이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면서 읍내 상점에 취직해서 5년쯤 장사를 배워 독립하고서 25살이 되면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급학교 진학과 그리스도 신앙의 영향 등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통학교에 다닐 때 그와 넷째 형 김동한은 어머니로부터 불려가 나중에 사제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그 길을 걷게 된다.한편 어머니는 방랑벽이 있던 그의 맏형을 만주까지 찾아가 데려왔다고 하며 김수환은 훗날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과 사랑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군위공립보통학교에 다니다가 김수환의 가족들은 대구로 이사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전학하여 1935년에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교구의 신학교였던 동성상업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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