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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합동 추모김윤환 정치인

김윤환 정치인

1932년 6월 7일 - 2003년 12월 15일 (향년 71세)추모소 개설:2020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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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님을 추모합니다.

김윤환(金潤煥, 1932년 6월 7일 ~ 2003년 1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작가, 시인이다. 호(號)는 허주(虛舟)이다. 195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 1978년 정계에 입문하여 10,11,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연달아 당선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여 한때 킹 메이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경상북도 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나 대구수창초등학교, 경북중학교(현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후에 오하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도 수학했다. 박정희, 김재규 등과 동향 출신이다.

195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남일보》,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주일, 주미 특파원과 편집국장 대리를 지냈다.

그의 아버지인 김동석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상북도 구미에 오상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1978년에 본격적으로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제10대 국회에서 유정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노태우와 경북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이점으로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여 권력 핵심부에 진입하였다. 1985년 문화공보부 차관에 임명되어 12대 국회의 의원직을 맡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군위군과 구미시 지역구에서 11대부터 14대까지 계속 의원직을 유지했다. 주일 특파원으로 일하던 때 익힌 일본식 계보, 금권, 막후 정치의 추종자로서 군 출신이 주도한 민정당 내에서 보기 드물게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선호했기 때문에 정무장관직을 여러 번 맡았다.

전두환 정권에서 문화공보부 차관, 대통령 정무비서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정무장관을 거쳤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주자유당 원내총무를 지냈으며, "김영삼 대세론"을 설파하여 동요하는 민정계를 설득해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문민정부 출범 후 민주계가 득세했을 때도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정무장관직을 맡으면서 민정계의 수장 노릇을 하였다. 이후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염두에 두는 듯했으나, 이회창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자 이를 적극 지원하여 이회창이 후보로 확정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역할들 때문에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1997년 4월 6일,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국민대화합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도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하였다"는 보도가 나옴으로써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는 전두환 노태우의 형 집행이 확정되기도 전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논의가 오가기 시작했다.

1997년 4월 17일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형 집행이 확정되자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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