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鄭夢憲, 1948년 9월 14일~2003년 8월 4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현대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75년 11월 현대중공업에 입사, 현대전자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 현대그룹 부회장,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현대전자(SK하이닉스의 전신)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2002년 9월부터 대북 불법송금 사건 관련 조사를 받던 도중 2003년 8월 4일 현대계동사옥 12층 회장실에서 갑자기 투신자살하였다. 본관은 하동.
정몽헌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의 다섯째 아들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태어났다. 1962년~1965년 송파구의 보성중학교, 1965년~1968년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페어레이디킨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75년 11월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현대그룹에서 활동했다. 1977년 2월 현대건설 이사가 되고, 1981년 2월부터 1988년 2월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 1984년부터 1991년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 사장, 1992년 1월부터 2000년 5월까지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 회장이었다. 1996년 현대전자 대표이사 회장으로 현대그룹 부회장이 되었다. 같은 해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현대상선 대표이사 회장직을 겸했다.
1983년 현대전자(하이닉스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경영권 갈등 이후 현대그룹이 쪼개지면서 투자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2001년 채권단에 매각, 하이닉스에 흡수된다.
1998년 현대그룹 부회장에서 공동회장으로 임명됐다가, 아버지 정주영이 명예 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정주영 사후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을 주관하였다.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과 4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킨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현대그룹의 경영권 계승을 둘러싸고 정주영 회장의 장남 정몽구와 갈등, 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조선시대 이방원과 이방석 사이의 대립에 빗대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라 불렀다.
2000년 3월 24일 귀국한 정몽헌 회장은 자신과 아버지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한다. 정몽구 회장은 26일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킨다.
2003년 8월 4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으나 타살 의혹이 있다.
시신은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 정주영의 묘소 100m 지점 아래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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