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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합동 추모손기정 육상선수

손기정 육상선수

1912년 10월 9일 - 2002년 11월 15일 (향년 90세)추모소 개설:2020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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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님을 추모합니다.

손기정(孫基禎, 1912년 10월 9일~2002년 11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체육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육상 선수로 활동했으며 주 종목은 마라톤이었다.

1936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한국인이었으나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어 이름인 손 기테이(일본어: 孫 基禎 (そん きてい))라는 이름을 쓰고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야만 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2시간 29분 19.2초를 기록하여 마라톤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했다.

해방 후에는 육상 감독과 체육 행정가로 활동하여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민국 마라톤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으며, 1952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마라톤 대표팀 감독 자격으로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를 맡았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당시 첫번째 성화 봉송 주자를 맡았다.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민포리에서 출생(1938년 평안북도 신의주부 남민포동으로 편입)하여 성장한 그는 신의주의 학교를 다녔다. 1926년(보통학교 5학년 때) 초봄에 해일이 일어나 오늘날의 신의주부 남민포동(南敏浦洞) 일대가 바닷물에 잠겨 학업을 중단하고 장사에 나섰다. 14세의 나이로 철따라 물건을 바꿔가며 참외장사, 각설탕 장사, 군밤장사 등을 했다. 덕분에 2학기부터 약죽(若竹)보통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으나, 6학년 졸업을 할 때까지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장사해야 하였다. 손기정은 집에서 학교까지 약 2킬로미터의 자갈길을 항상 뛰어다녔다.

손기정은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개신교 사상가인 김교신 선생이 교사로 일한 학교였으므로 김교신 선생과 교사와 제자로서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촌 김성수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지만, 일제의 감시 탓에 자퇴한 후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에 일본의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활약했으며,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마라톤 대회 13개에 참가했고 그 중 10개에서 우승했다. 그는 1935년 11월 3일에 2시간 26분 42초의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1947년까지 유지되었다. 개인 최고 기록은 이보다 더 좋은데, 표준 마라톤보다 더 긴 코스(42.715 km)에서는 2시간 25분 14초, 더 짧은 코스에서는 2시간 24분 51초를 기록했다.

1936년 8월 9일에 열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경기는 우승 후보로 꼽히던 아르헨티나의 후안 사발라와 손기정의 다툼이었고 손기정은 후반의 막바지 코스인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앞서 가던 사발라를 추월하면서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경기 다음 날 손기정을 면담하고 격려하였다.

손기정은 유럽 여러 나라와 인도를 거쳐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선배로부터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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