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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
합동 추모김삼순 생물학자

김삼순 생물학자

1909년 2월 3일 - 2001년 12월 11일 (향년 92세)추모소 개설:2020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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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님을 추모합니다.

김삼순(金三純, 1909년 2월 3일~2001년 12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세균학자이다.

호(號)는 봉조(鳳鳥)이고 새박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였던 그녀는 전라남도 담양군 출생이고, 정치가 이회창의 이모이기도 하다.

1909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1927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1933년 일본 홋카이도 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1933년부터 1938년까지 진명여고, 경기여고 교사, 1940년 4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일본 규슈대학 이학부 조수를 역임하였다. 1966년 일본 규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서울여대 교수를 맡았고 1970년부터 삼성농장 대표를 맡았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균학회 회장을 맡았고, 1976년부터는 한국균학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김삼순 교수는 남다른 과학 열정으로 한국 균학의 제도적, 학문적 발전을 이끈 한국의 첫 여성 과학자이자 균학의 대모다.

그녀는 일본의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활동하다가 1941년 한국인 여성 최초로 제국대학 이학부에 입학했다.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로 진학한 그는 사카무라 테츠(坂村撤)의 식물생리학교실에 들어가 곰팡이의 일종인 사상균을 주제로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Nitrite의 흡수에 관해서”와 “사상균에 의한 초산염 및 색소의 흡수”라는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1943년 9월 졸업했다. 졸업 후 그녀는 균학을 배우기 위해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응용균학교실에 들어갔다. 이 무렵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자 그녀는 귀국했고, 해방이 되면서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게 됐다.

해방 후 김삼순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과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된 후에도 박사학위에 대한 미련이 커 일본으로 갈 방도를 계속 모색했다. 1948년 그 기회가 생기자 교수직을 사임하고 떠날 채비를 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유학을 포기하지 않고, 15년 만인 1961년에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다. 그녀는 홋카이도대학을 거쳐 규슈대학 농학부의 도미타 키이치(富田義一) 교수의 생물물리연구실에서 연구생으로 활동했다. 과학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남달랐던 것을 알 수 있다.

규슈대학에서 그는 누룩곰팡이가 분비하는 탄수화물 분해효소인 다카아밀라제 A와 빛의 상호관계를 주제로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편의 논문을 [일본농예화학회지]에 발표하고,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도 1965년 도미타와 함께 “Substrate Effect on Heat Inactivation of Taka-amylase A”와 “Inhibition of Photo-Inactivation of Taka-amylase A by Halogen Ions”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논문들을 종합하여 1966년 “Photoinactivation of Taka-amylase A(다카아밀라제 A의 광불활성화)”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한국인 최초로 여성 농학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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