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한
홈합동 추모김정한 소설가

김정한 소설가

1908년 10월 20일 - 1996년 11월 28일 (향년 88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3일
8,364명 방문

김정한님을 추모합니다.

김정한(金廷漢, 음력 1908년(융희 2년) 9월 26일/양력 1908년 10월 20일 ~ 1996년 1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호는 요산(樂山)이다.

경상남도 동래부 북면 남산리(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김해 김씨 집성촌에서 7남매의 맏이이자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본향은 경북 청도다. 그는 김일손의 조카 삼족당 김대유의 후손이다. 무오사화로 연좌되어 호남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후 풀려났다. 그 후 김정한의 선조들이 이곳에서 세거하게 되었다.

어려서 증조부가 세운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열두 살이 되던 해인 1919년 범어사 경내에 있던 명정학교(지금의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의 전신)에 입학했다. 중앙고보에 입학했다가 동래고보(현재의 동래고등학교)로 옮겨 1928년 졸업했다. 선생은 울산 대현보통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일본의 민족적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고 조선인교원연맹 조직을 계획했으나 일경에 체포됐다. 이 일을 계기로 교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1931년 유학생회에서 발간하는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에 참여하였고, ‘조선시단’에 ‘구제사업(救濟事業)’이란 단편을 기고했다가 작품 제목만 실리고 내용은 전문이 삭제를 당했다.

1932년 여름방학 때 귀국한 선생은 양산 농민봉기사건에 관련돼 투옥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이듬해 남해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농민문학에 투신한다.

《사하촌》, 《옥심이》, 《항진기》, 《그러한 남편》, 《기로》, 《월광한》, 《낙일홍》, 《추산당과 곁사람들》 등의 작품을 남겼다.

분향

5
회

추모합니다

분향함을 클릭하여 향을 꺼내세요.

헌화

1
송이

최근 헌화

박미르

국화꽃 헌화

꽃 더미를 클릭하세요

1회만 헌화 가능
공유:

추모글

0
개

아직 추모글이 없습니다.

첫 추모글을 작성해주세요

로그인 없이도 추모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분향
5
회
헌화
1
송이
추모글
0
개
방문자수
8,364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