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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욱
합동 추모윤재욱 정치인

윤재욱 정치인

1910년 8월 25일 - 1996년 6월 2일 (향년 85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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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욱님을 추모합니다.

윤재욱(尹在旭, 1910년 8월 25일 ~ 1996년 6월 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초대, 제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윤재욱은 1910년 8월 25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죽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죽면 3·1 운동에 참여한 윤학희(尹學熙)였다. 서울 YMCA학원, 피어선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41년 치과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하고 치과의사로 일했다.

광복 이후 영등포청년회를 조직했는데, 당시 영등포 일대 27개 동(洞) 지부를 조직하고 광복군 출신 장교에게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회원이 불어나면서 광복청년회 영등포 특별지회로 재발족하였다. 본래 좌익계에서 조선민주청년동맹 초대 위원장으로 추대했으나 연설 중 계급투쟁의 부당성을 강조하여 좌익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후 영등포 일대에서 좌익에 대한 유혈 투쟁에 관여했으며, 영등포청년회 세력을 기반으로 대동청년단에 들어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자유특별시 영등포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국회에서 외무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제헌 헌법 질의에 참가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정부수립 전후 그는 주요 요직에 과도정부와 한국민주당 측 인물을 기용하는 데 항의하는 건의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하였고,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유보하자는 대통령의 방침에 반대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민족청년단과 세력다툼이 있었음에도 대한청년단 발단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이범석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워 족청계로 분류되었다.

1949년 9월에는 민주국민당에 입당했으나 다시 탈당하고, 1950년 대한국민당 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자유특별시 영등포구 갑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1951년 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52년 5월 내각책임제 개헌반대 전국정당사회단체 공동투쟁위원회 서울특별시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52년 개헌 이후 9월 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의장단 3명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1953년 1월 대한청년단 내 족청계의 지지로 원외자유당 대표위원이 되었다.

1954년 5월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영등포 갑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6년 3월 이범석 등에 의한 공화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으며, 1957년 1월 원내교섭단체 정우회(政友會)의 발족에 참여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자유당으로 복당했으며 1959년 자유당 서울시대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6월 민우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동년 9월 민우당을 비롯한 3당이 국민의당으로 통합하자 그 조직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치과의사로 일했으며 1972년 10월 유신 지지 성명서 발표에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한노인회 중앙회부회장, 한국청년운동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1987년 이후 제헌동지회 부회장, 국회의원 동우회수석부회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중앙회 고문, 제3대 국회의원 친목부회장, 1990년 건국청년운동협의회 회장, 1991년 제헌동지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1996년 6월 2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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