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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합동 추모김남주 시인

김남주 시인

1946년 10월 16일 - 1994년 2월 13일 (향년 47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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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님을 추모합니다.

김남주(金南柱, 1946년 10월 16일 ~ 1994년 2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시인, 시민·사회 운동가이다. 유신을 반대하는 지하신문인 「함성」(뒤에 「고발」 로 제호변경)을 발간하였고 인혁당 사건,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민청학련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1980년 남민전 사건 조직원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988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고, 1993년 2월 문민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사면 복권되었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 아닌 '전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1996년 명예 졸업장 추서)

김남주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와 어머니 문일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정책에 반발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1969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전남대 재학 시절에 3선개헌과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적극으로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 10월 초 유신 헌법이 선포되자 그는 이강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로 유신을 반대하는 신문인 「함성」을 발간하였다. 이후 어렵게 「함성」을 운영하다가 1973년에 제호를 「고발」로 변경하여 발간하였다. 그 해 「고발」을 전국에 배포하려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1973년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전남대학교에서 제적당했다. 8개월간 복역한 후 해남으로 귀향해 농사일을 하였다. 1974년 〈진혼가〉와 〈잿더미〉를 비롯해 시 7편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문학 활동 이외에도 광주·전남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활발히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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