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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합동 추모김상만 언론인

김상만 언론인

1910년 1월 19일 - 1994년 1월 26일 (향년 84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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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님을 추모합니다.

김상만(金相万, KBE, 1910년 1월 19일~1994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이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동아일보 회장, 아시아신문재단 회장, 《국제언론인협회(IPI)》의 종신명예회원 등을 역임하였다.

호(號)는 석촌(惜村)·일민(一民)이고,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인촌 김성수와 고광석의 장남이다.

군사 정권 당시 야당 성향의 언론을 운영하며 정권에 맞섰으나,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친정부 내지는 친보수 성향을 보였다.

일민 김상만은 1910년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455번지에서 동아일보의 설립자 김성수(金性洙)와 고광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한지도 2년 후 1930년 2월 일본에 유학, 1933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예과(학사)를 수료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교 정경대학(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1936년 영국 런던대학교 정치학 석사 수료 이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 1940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법학석사)를 나왔으며, 1985년 일본 와세다대학으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9년 동아일보 이사로 언론계에 투신한 이래 45년간 동아일보사의 실질적인 사주(社主)로서 재임하는 동안 동아일보의 사세가 신장되었다. 아버지인 김성수의 사후 그는 사촌형인 고재욱과 상의하여 회사를 경영해 나갔다. 이후 점차적으로 그는 막후에서 영향력과 실력을 행사하였다.

1955년 재단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에 선출되었다. 1955년 동아일보사 상무, 1961년 전무이사 겸 발행인을 거쳐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1963년 4월 25일에는 동아방송(DBS)을 개국하였고, 일간 ≪소년동아≫(1964.7.)를 창간하였으며, 일제하에 발행되다가 폐간된 월간 신동아(1964.9.), 여성동아(1967.11.) 등의 잡지를 재발간하였다. 1966년 동아일보 부사장 겸 발행인으로 재임 중, 신동아 필화사건이 일어나 발행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1971년 8월에는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하였다. 1974년에는 동아일보사 기자와 동아방송 프로듀서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회사측과의 갈등이 심화 대립되는 상태가 벌어졌는데, 이 해 말부터 박정희(朴正熙) 정권은 동아일보와 모든 자매지에 대한 광고 탄압을 자행하여 안팎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그 와중에서 기자와 방송 프로듀서들에 대한 집단해고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김상만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공로로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의 1975년도 ‘자유의 금펜상(Golden Pen of Freedom)’을 받았다. 이어서 1977년 동아일보사 대표이사 회장, 1981년 동아일보사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에서 해고된 직원들의 처우를 외면하여 후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78~198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본부이사를 지냈다.

사후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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