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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진
합동 추모백두진 정치인

백두진 정치인

1908년 10월 31일 - 1993년 9월 5일 (향년 84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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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진(白斗鎭, 1908년 10월 31일~1993년 9월 5일)은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호(號)는 소계(小溪)로, 대한제국 황해 신천에서 태어난 실향민 출신이다.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였으며 한성부에서 성장했다. 1927년 경성 휘문고보를 졸업했으며 3년 후인 1930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4년 도쿄 상과대학(현재의 히토츠바시 대학)을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은행에 입사한 이후 1943년 조선은행 상무이사 등을 지내다가 이듬해 1944년 조흥은행 전임이사 등으로 영전하였으며 해방 이후인 1945년에는 조흥은행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후 1949년에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등을 거쳐 같은 해 1949년 임시외자관리청장 등을 거쳐 식산은행 행장 등을 역임했다. 1951년 재무부 장관이 되었을 때는 중석불 사건을 겪기도 했다. 1952년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1953년 4월 24일부터 1954년 6월 17일까지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후 이후 민주공화당 상임고문 겸 동당 총재 상담역, 제 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으며, 제8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으로, 제9대 국회에서는 유신정우회 회장을 지냈으며 10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12월 21일부터 1971년 6월 3일까지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고 1973년에서 1980년까지는 유신정우회 의원이었으며, 1973년에는 유신정우회 의장을 맡아 유신체제에 적극 협력하였다. 이후 제10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지냈으나 1979년 10월 26일 10.26 사태가 일어나자 사퇴하였다.

1908년 10월 31일 황해도 신천의 중농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한성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1910년 2월, 일가족과 함께 황해도 신천 향리로 다시 귀거(귀향)하였고 그 후 휘문고보 진학을 하면서 경성부 유학을 하였다. 1927년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황해도 신천)에서 3년 동안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0년 일본으로 유학하였다. 1934년 도쿄 상과대학(현재의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상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조선은행에 들어가 조선은행 직원으로 근무하였으며 1943년 조선은행 상무이사 등을 지냈고 1944년 조흥은행 전임이사 등으로 영전하였다. 그 뒤 1945년의 8.15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초순에서부터 같은 해 1945년 10월 초순까지 약 한달 여 남짓 동안 조흥은행 부이사장 등을 지냈고 1945년 11월 초순부터 1949년 5월 초순까지 4년 남짓 동안 한국은행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1949년 6월 중순부터 같은 해 1949년 8월 중순까지 두 달 남짓 동안 재무부 임시외자행정총국 국장 등을 잠시 지냈다.

광복 후 1945년 11월, 한국은행 이사장(理事長)에 발탁되었다. 그 후 1949년에는 재무부 임시외자행정총국 국장 등을 잠시 역임, 식산은행장(殖産銀行長)을 거쳐, 임시외자관리청(훗날의 外資廳)의 제1대 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휘문의숙 재단 이사에 선발되었다.

1970년 12월 21일 다시 국무총리에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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