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性徹, 1912년 4월 6일 (음력 2월 19일) ~ 1993년 11월 4일)은 대한민국의 승려이다.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고 아호는 퇴옹(退翁)이다. 대한민국의 선종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典型)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승려이다. 1912년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산청 출생이며, 1993년 11월 4일 합천 해인사 퇴설당에서 입적하였다.
1912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해인사에서 동산(東山) 대종사를 은사로 삼아 사미계를 받고 출가하였으며, 이후 1938년에는 운봉(雲峰) 스님을 계사로 하여 보살계 및 비구계를 수지함으로써 본격적인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봉암사에서 청담(靑潭) 스님과 함께 수행하며 “부처답게 살자”는 결사(結社)를 주창하였고, 이를 통해 당시 한국 불교의 침체된 수행 풍토에 강력한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 결사는 단순한 수련 활동을 넘어서, 수행자 스스로 부처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엄격한 자기반성과 실천적 정진을 의미하며, 근현대 한국 불교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성철 스님은 이후에도 선종의 정통을 계승하고자 다수의 제자들을 지도하였으며, 경허–만공–청담으로 이어지는 근대 선맥의 연장선에서 독보적인 사상적 위치를 확립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으로 추대되어, 불교 교단의 수행적 기풍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사명 아래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방장 재임 중 해인총림은 한국 불교의 중심 수행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스님의 청정한 계행과 강고한 선 수행은 수많은 불자에게 귀감이 되었다.
1981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는데, 이는 그의 사상적 깊이와 수행적 권위가 불교계 전반에 걸쳐 널리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종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권위주의적 태도에 기대지 않았고, 오히려 수행자의 본분에 충실할 것을 끊임없이 역설하였다.
스님은 일생을 세속과의 단절 속에서 보냈으며, 물질적 풍요나 외적 명성보다 내면의 수행과 깨달음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말년에는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해월정사에서 머무르며 요양하였다. 이는 장좌불와 수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된 까닭이며, 이는 그의 수행이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 철저히 정진의 길을 고집했음을 방증한다.
1993년 11월 4일 성철 스님은 향년 81세를 일기로 해월정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말기에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임종 순간에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앉은 자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 장면은 그의 평생 수행자다운 엄격한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특히 임종 시에는 친딸이자 출가한 불제자인 불필(佛必) 스님이 곁을 지키며 지극한 정성을 다했다.
스님의 장례는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공식적인 7일장(七日葬)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많은 불자들과 수행자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깊은 애도와 존경의 뜻을 표하였다.
성철스님의 선불교 교리의 사상적 견해는 저서인 《선문정로》(1981)에 잘 나타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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