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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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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 (향년 63세)추모소 개설:2020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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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님을 추모합니다.

천상병(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주막에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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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익명2021. 2. 18. PM 5:51:50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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