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柳想鐵, 1971년 10월 18일~2021년 6월 7일)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 지도자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올라운더형 선수로 평가받으며, K리그와 J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4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해당 월드컵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K리그 출범 30주년을 기념으로 선정된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 후에는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를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대전 시티즌, 울산대학교 축구부,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을 맡았다. 인천 감독 활동 중인 2019년에 췌장암 판정을 받으며, 축구인 활동에서 물러났다. 이후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2021년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 출생으로 응암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평소에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과 성씨가 '유'씨인 것에 착안해서 '유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는, 유독 한일전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추가로 K 리그에서는 울산 현대에서 두번의 K 리그 우승과 포지션별로 모두 3번의 베스트 11에 선정되면서 김현석과 이천수 못지 않은 울산 현대의 레전드로 불리기도 했다. 울산 현대에서의 별명이 멀티 플레이어였으며 이 별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서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준 선수 중 하나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뛸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훈련을 통해 극복해 냈고, 1998년 FIFA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투혼의 헤딩 동점골과 2002년 FIFA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기록한 2번째 강력한 오른발 슈팅골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첫 승과 4강 달성에 일조했다.
이후 유럽진출이 나왔으나 이루지 못했고 2006년에 울산 현대에서 은퇴를 했다.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1년 7월 왕선재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 프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나 2012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한 후 팀을 떠났다. 2014년 초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임명된 후 2014년과 2015년 1, 2학년 대학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2015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축구 대학부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17년 48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7년 12월 4일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면서 5년만에 K리그로 돌아왔으나, 성적 부진으로 2018년 8월 16일에 사퇴했다.
1994년에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울산 현대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9년 J리그의 요코하마 F.
2003년 6월 요코하마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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