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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합동 추모노무현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 (향년 62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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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님을 추모합니다.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출생이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3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1년을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여러 인권 사건을 변호하였다. 1988년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의 공천을 받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부산 동구에서 당선되며 5공비리특별위원으로 활동했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과 결별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고 국민경선제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2003년 말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2004년 초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개혁 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무렵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정한 중립의무 및 헌법 위반을 시유로 야당에 국회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탄핵 소추를 진행해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이후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은 여론의 역풍에 휩싸여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였고 얼마 후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을 기각하며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주요 업적으로 권력층에 만연하던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기존 정권이 하지 못했던 각종 재벌 개혁을 시행한 것이 꼽힌다.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대기업 총수의 탈세 여지를 좁히고,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를 시행하고, 대기업 간 불공정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임기 중 경제성장률은 4.42%로 OECD 평균성장률을 항상 상회했지만 이러한 수치는 이후 이명박 정부의 2.9%와 박근혜 정부의 2.8%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나, 역대 대한민국 정부 중 OECD의 성장률을 하회한 정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IMF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 대비 국내 경제성장률이 노무현 정부 -0.7%, 이명박 정부 +0.0%, 박근혜 정부 -0.5%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는 골디락스 호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 못했고 도리어 이를 가장 크게 하회한 대한민국 정부로 기록되었다.

주요 실책은 정치적으로 친인척 및 측근비리, 사회적으로 교육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경제적으로 양극화 심화에 따른 민생경제 파탄, 외교적으로 햇볕정책의 실패 등이 꼽힌다. 부동산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 분배 지표가 더욱 악화되어 서민경제의 파탄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퇴임 후 고향 김해의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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