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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합동 추모유관순 독립운동가

유관순 독립운동가

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 (향년 17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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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님을 추모합니다.

유관순(柳寬順, 1902년 12월 16일~1920년 9월 28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일제강점기에 3.1운동으로 시작된 만세 운동을 하다 일본 형사들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이뤄진 모진 고문으로 인해 순국했다.

1916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인 사애리시 부인(사부인)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장학생으로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했다. 3월 1일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4월 1일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교도소에 갇혔다가,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고,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20년 4월 형기가 1년 6개월로 단축되었으나, 형기를 마치기 전 교도소에서 1920년 9월 28일에 순국했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월 1일, 대한민국 여성 중 처음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1996년에 이화여자고등학교는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의 생가가 복원되어 1991년에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과 천안종합운동장 내 '유관순체육관'은 유관순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편, 수많은 업적을 남긴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활동이 미미한 그녀가 가장 유명해졌고, 더불어 여성들 중 처음으로 1등급 훈장을 받은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 유관순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오히려 해방 이후인데,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을 했던 박인덕 등이 본인의 친일 활동을 덮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기념 사업을 추진했다는 의혹이다. 박인덕은 일제강점기 말 친일로 전향하기 이전에는 교육 활동에 앞장섰고, 3.1운동 당시에는 이화학당의 교사였다.

본관은 고흥 유씨이다. 두음법칙과 관련하여 성명 표기에 대해 과거에 논란이 있었다. 2007년 4월에 일부 성씨의 사람들이 호적상 이름을 변경해 달라며 낸 신청을 받아들이는 지방법원의 결정이 있었고, 표기 문제에 대해 여러 국가기관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논의의 결과 2007년 8월에 대법원의 호적예규가 개정되었고 이에 따라 류씨의 성을 가진 사람은 본인 의사에 따라 한글로 '류'로 쓸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10월 현재는 개정된 호적예규가 문제시될 것이 없다고 확인을 했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비영리 사단법인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처음에 ‘유’ 표기를 쓰고 있었고 2001년에 ‘류’로 바꾸었다. 그러나 두음 법칙에 따라 교과서나 공식 행사에서 오랜 기간 '유관순'으로 표기해왔고 '류'로 고쳐서 생긴 사회적 혼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2014년부터 유관순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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