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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
합동 추모이용일 야구인

이용일 야구인

1931년 4월 17일 - 2025년 9월 7일 (향년 94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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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님을 추모합니다.

이용일(李容一, 1931년 4월 17일 ~ 2025년 9월 7일)는 대한민국의 야구인, 행정가, 기업인이며, 제1~3대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 및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대행을 지냈다.

1931년 4월 17일 경기도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경성고무 창업주 이만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로 아랫집에 살던 전 야구 국가대표 선수 유복룡과 매일 캐치볼을 하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게 되었다.

군산중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서울 경동중학교로 전학했는데, 마침 해방을 맞이한 해였다. 이때 유복룡의 제안으로 경동중학교 야구부가 창설되었고 그는 초대 멤버로 활약했다. 졸업 후 195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해 대학 야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50년 6월 전국학도호국단 체육대회에 참가했으나, 6월 25일 전쟁 발발로 대회가 중단되었다. 같은 해 10월 군에 입대해 특과장교로 복무했으며, 1956년 3월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1953년 창단된 육군 야구단의 창단 멤버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전역 후에는 가업인 경성고무 전무로 근무했다. 전역 직후 체중이 크게 불어나자 이를 계기로 야구 동아리를 만들어 군산중학교와 군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군산 지역에는 불량 청소년이 많았는데, 그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야구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2년에는 군산국민학교, 중앙국민학교, 남국민학교, 금광국민학교 등 4개 초등학교에 야구부를 창단했다. 이후 이들이 진학할 지역 고교 야구팀이 없다는 문제를 절감하고, 1968년 마침내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를 창설하여 지역 야구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1978년 경성고무를 선경그룹에 매각한 뒤, 대한야구협회 회장의 부탁을 받아 대한야구협회, 한국실업연맹, 한국대학연맹, 한국고교연맹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79년 2월 현재의 대한야구협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유소년 야구 지원과 유망주의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차세대 선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대한야구협회 전무로 일하던 중, 1980년 2월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진행된 사회정화 운동에 휘말려 협회 전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후 야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함께 협회에서 활동하던 이호헌도 같은 처지에 놓였고, 두 사람은 실직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1981년 5월 청와대 이상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만나 프로야구 창설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한국 프로야구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이상주 수석은 TV에서 중앙대학교 서영무 감독이 “이제 한국도 프로야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야구와 축구의 프로리그 출범을 구상하게 되었으며, 이는 당시 신군부가 민심 수습을 위해 추진한 3S 정책의 일환과도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창설 논의가 진행되었고, 이용일과 이호헌은 머리를 맞대고 창단 계획을 추진했다.

2025년 9월 7일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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