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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남
합동 추모조명남 성우

조명남 성우

1943년 6월 14일 - 2026년 2월 2일 (향년 82세)추모소 개설:2026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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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남님을 추모합니다.

조명남(趙明男, 1943년 6월 14일 ~ 2026년 2월 2일)은 대한민국의 성우 겸 배우로, 196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뒤 이듬해 1964년 DBS 동아방송 공채 2기 성우(지금은 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7기로 분류)로 데뷔하였다. 한국방송 성우극회 소속이다.

1943년 6월 14일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진학했다.

친구가 소속된 연극부에 우연히 들러 연습 장면을 지켜보고 소견을 전한 것을 계기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3년 ‘처용극회’를 조직하며 연기 활동에 입문했다. 이후 1964년 동아방송 공채 2기 성우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데뷔했는데, 당시 방송국 남자 사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려 ‘노노레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1965년 한일약품 ‘프로헤파룸’ 라디오 CM을 시작으로 광고 내레이션 분야에 발을 들였다.

당시에는 성우 대부분이 연극 경험자였던 탓에 CM 내레이션을 촌스럽게 여기며 라디오 드라마 출연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CM과장이던 이병호는 그의 목소리를 시험해 본 뒤 “야야, 넌 안 되겠다. 아예 CM과 근처에도 오지 마라”고 호통쳤으나, 그가 끝까지 버티자 마땅한 대안이 없던 이 과장은 결국 조명남에게 CM을 맡겼고, 조명남 역시 이를 수락했다.

1968년부터 1990년까지 종근당 PR 광고에서 사용된 “당신은 잠들어도 맥박은 뛰고 있습니다”라는 차분한 멘트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금성사 광고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등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는 문구를 남겼다. 그가 맡은 광고 내레이션은 2,000여 편에 달한다.

후배 이광세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광주·전남 지역의 일부 광고와 진보 재야 언론사 광고에도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여원> 1984년 8월호 ‘Human Report’ 칼럼에서는 그의 내레이션 스타일을 두고 “담배 연기 같은 안개와 맥주 거품 같은 허무가 깔린, 감정이 실린 사람 냄새 나는 목소리”라고 평했다.

배우로서는 1960년대 중반 행동무대(훗날의 사계)를 거쳐 1967년 동료 DBS 성우들과 함께 ‘동우극회’를 결성했다. 이후 1970년대 내내 ‘자유극장(1976)’, ‘현대극장(1979)’, ‘민예극장(1979~1984)’ 등을 오가며 활동했으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색시공>, <빠담빠담>, <알부자>, <우리 읍내>, <고도를 기다리며>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1980년부터는 연출가 임영웅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해 1984년 말 극단 ‘산울림’으로 이적했으며, 1985년 <하늘만큼 먼 나라>에서 서 영감 역을 맡아 열연해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어 1986년 <위기의 여자>로 동아연극제 대상, 1989년 모노드라마 <심판>으로 1990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20년부터 경기 고양시 정발산동 주민자치센터 연극반 '톨'에서 강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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