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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합동 추모이창수 유도인

이창수 유도인

1967년 3월 7일 - 2026년 1월 20일 (향년 58세)추모소 개설:202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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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님을 추모합니다.

이창수(李昌壽, 1967년 3월 7일~2026년 1월 20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지도자이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태어났으며, 1980년대에 유도 선수로 활동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갈비뼈 부상을 입었으나, 부상을 안은 채 여러 경기를 치르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인 정훈과 맞붙었다. 당시 정훈 역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병역 혜택이 예정되어 있어 우승에 대한 동기가 강한 상황이었다. 관절기 공격으로 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이어갔으며, 결국 판정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은메달을 획득했다.

정훈은 이창수에 대해 "그동안 상대했던 선수들 가운데 가장 강한 선수였다"고 평가했으며, 과거 대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경험으로 인해 결승전을 앞두고 약 3개월간 집중적인 전력 분석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회 이후, 결승전 패배를 이유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으로부터 정치적 불이익을 받았다. 대한민국 선수에게 결승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강제 은퇴 조치를 당했으며,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은 동일한 처분을 받지 않았고, 이창수 개인에게만 책임이 부과되었다. 또한 동료들로부터 사상 검증과 자아비판을 요구받는 등 정신적·사회적 압박을 겪었다. 장성택의 개입으로 이틀 만에 탄광에서 풀려나 국제 대회 대표단에 복귀하였다.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이 이어지면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고, 체육교사로 전향해 활동했다.

불가리아에서 열린 국제 유도 대회 기간 중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탈북 의사를 적은 쪽지를 은밀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베를린을 경유하는 국제 열차를 이용하던 중 열차에서 이탈해 탈북을 시도했으며, 여러 위험한 상황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탈하는데 성공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남북 체육 교류 전반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1991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와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를 계기로 논의되던 남북 단일팀 구성 움직임은 탈북을 전후로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뒤 관계 당국의 보호와 조사를 거쳐 국내에 정착하였다. 탈북 1년 후인 중화민국 유도 국가대표 출신 천링전과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다. 세 아들은 모두 유도를 수련하였다.

한국마사회 유도팀 코치로 활동했으며, 중화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지도자와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또한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했으며, 2020년 하계 올림픽 이후 현장 지도에서 물러났다.

이창수는 2026년 1월 20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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