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李姬鎬, 1922년 9월 21일~2019년 6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두 번째 배우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 경성부 수송정에서 아버지 이용기와 어머니 이순이의 딸로 태어났다. 이용기는 한국 의사 면허 4호 의사로 남원도립병원장, 포천도립병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어머니 이순이는 한의사 집안의 딸이었다. 7남 2녀 중 장녀였다.
이화고등여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수학한 후 1950년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피난살이의 와중에도 이태영, 김정례 등 1세대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1950년), 여성문제연구원(1952년) 등을 잇따라 창설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모임에서 이희호는 해운회사 사장 김대중을 처음 만났다. 미 공군에 근무하던 감리교 크로 목사의 주선으로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희호는 대한여자청년단 간부 김정례를 통해 김대중을 처음 만났는데, 김정례는 1·4 후퇴 때 서울의 피란민들을 배로 후송하려고 인천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피란민을 싣고 갈 배의 주인이 김대중이었다. 김정례는 김대중에게 피란민들을 부탁하고 부산에 오게 되면 한번 만나자고 했고 뒤에 부산으로 사업 거점을 옮긴 김대중은 김정례를 찾았는데, 김정례는 김대중과 만나는 자리에 대한여자청년단 간부들과 함께 나왔고 그 간부들 중에 이희호가 있었다.
서울의 대학생 모임이었던 '면학동지회'는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다시 모였는데 33명으로 시작한 면학동지회는 전쟁이 나는 바람에 후속 회원을 뽑지 못했고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기 때문에 '면학동지회'는 이름을 '면우회'로 고치고 외부인도 받아들였다. 면우회는 한 달에 한번씩 모였고 김대중은 면우회가 외부인에게도 개방하면서 면우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열린 그 모임에서 이희호와 김대중은 시국, 인생 등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미국 램버스 대학교(1954년~1956년)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스카릿 대학교 대학원(1956년~1958년)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8년 미국에서 귀국 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학과 강사가 되었고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직 등을 역임하였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일하며 여성계 지도자로 자리잡아가고 있던 시점인 1962년 5월 41세의 나이로 39세의 정치 낭인 김대중과 결혼(초혼)하였고 다음 해인 1963년 11월에 아들 김홍걸을 낳았다. 이희호는 감리교인이었고 김대중은 천주교인이었지만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는 관계였다. 이희호는 김대중이 선거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가산도 탕진한 인물이었지만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신념을 높이 평가하여 배우자로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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