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南仁樹, 1918년 10월 18일~1962년 6월 26일)는 일제강점기 시기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학력은 1932년 진주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음이 일제시대 학적부를 통해 확인된다. 남인수는 가수로 데뷔하면서 작사가 강사랑이 지어준 예명이다.
남인수의 친모 장하방은 처음 최씨 집안(진주시 미천면 미곡리)으로 출가하였으나 남편의 사망으로 진주 하촌동 드무실에 사는 강영태의 소실로 들어가 낳은 아이가 강문수(예명 남인수)이다.
다소 불우한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인수의 가족은 미국에 살고있는데 그간 진주의 강씨집안과는 교류가 없었다.
이는 남인수의 어린시절이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강씨집안에서는 추정한다.
현재 진주 강씨집안과 남인수 전승 보전회에서 진주시 하촌동에 있는 강씨집안 묘지에 남인수의 묘를 이장하여 단장하고 관리하고 있다.
남인수 묘소 근처에 진주시에서 설치한 작은 정자가 있는데 정자의 이름이 '문수정'이다.
《눈물의 해협》, 《애수의 소야곡》, 《물방아 사랑》, 《꼬집힌 풋사랑》, 《감격시대》, 《항구의 청춘시(靑春詩)》, 《울며 헤진 부산항》, 《서귀포 칠십리》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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