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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
합동 추모현인 가수

현인 가수

1919년 12월 14일 - 2002년 4월 13일 (향년 82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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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님을 추모합니다.

현인(玄仁, 1919년 12월 14일 ~ 2002년 4월 13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동주(東柱)이고 창씨개명 당시의 이름은 고토 진(後藤 仁)이다.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부산부 출신으로 양산군을 거쳐 동래군에서 성장한 그는 배구 선수로 생활하다가 성악가(테너)로 전향하여 이듬해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바꾸었다. 1944년 플루트 연주자가 되었고 기타 연주자, 트럼펫 연주자로서 활동하다가 가수 활동으로 《신라의 달밤》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영화 《푸른 언덕》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현인은 1919년 12월 14일, 부산에서 아버지 현명근과 어머니 오봉식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잠시 유년기를 지내기도 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회사의 사원 주택이 있던 영도와 할머니의 댁이 있던 동래를 오가며 성장하였다. 이후 석유 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도쿄 지사의 기자가 되어 일본으로 떠나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러시아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의 독창회를 보고 처음으로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1931년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현인은 1933년도에 학교의 배구 대표 선수였을 만큼 운동도 잘 하였고, 방과후에는 밴드부에서 일본의 대중가요나 미국의 포크송을 트럼펫으로 즐겨 불렀다. 학창 시절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던 현인은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1938년 일본 육사에 진학하기 위해 도쿄로 갔지만 방향을 바꿔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에 진학하여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다. 일본 유일의 관립 음악학교인 도쿄 음악학교는 당시 음악 엘리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음악학교 진학을 너무도 불쾌하게 여긴 아버지가 학비 관련 지원을 끊자 현인은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1년 뒤 NHK 합창단의 모집 광고를 본 현인은 오디션에 응시하여 단원이 되었다. 유학 시절 왕족 출신의 마리코와 연애하기도 했다고 하나 곧 귀국하여 소학교 교사였던 조창길과 첫 결혼을 하였다.

1939년에 고토 진(後藤 仁)으로 창씨 개명하였는데, 훗날 그의 예명이 된 현인(玄仁)은 고토라는 성만 현으로 바꾼 것이다. 1942년에 도쿄 음악학교를 나오고 귀국하여 성보악극단의 음악 교사로 일하였다. 1943년에 동료들과 악극단을 구성해 톈진으로 가서 클럽 신태양의 무대에 올랐으며, 베이징, 항저우 등지로 공연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한 뒤에 베이징 비밀 형무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가족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현인은 벌이가 좋은 미군 위문 공연에 뛰어들어 탱고를 전문으로 하는 고향경음악단을 조직하였다. 1947년 29세에 최초의 나이트클럽인 뉴스맨스 클럽 무대에서 활동하며 밤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해 박시춘이 작사하고 유호가 작사한 '신라의 달밤'을 발매하여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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