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중락(車重樂, 1942년 3월 2일 ~ 1968년 11월 10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차중락은 1942년 3월 2일 경성부에서 부친 車駿達(차준달)과 모친 安小順(안소순)의 8남 3녀 중 셋째아들(3남)로 태어났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 304번지 603호에서 출생하였고 차중락의 부친은 해방 이전에 서울시청(京城市廳)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경성부 공무과장직 일을 하였는데 출신학교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이자 건설,토목 관련일을 보았던 공무원 출신이었다 해방 후 개인사업가로 변신하여 (株)신흥인쇄소를 경영하였는데 중구로 변경되기전 성동구갑부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집안은 매우 부유하였고, 모친은 경성여자고등상업학교 시절 단거리 선수였으며, 시인 김수영은 차중락 큰이모의 아들이었으니 차중락 그와는 이종사촌간이었다.
차중락 그는 6.25 한국전쟁 이전에 유년기시절에 初名은 화종(華鐘)이라 불리었고 동생 차중광은 명종(明鐘)으로 불리다가 전쟁이 끝난 1953년말 重樂으로 동생은 명종에서 重光으로 서울지방법원에 의하여 개명절차가 완료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예능과 체육에 남다른 특기를 보여주었고 특히 그림 삽화와 유화를 전문가수준 정도로 잘 그렸다.
큰 형님은 역도선수 출신이고 둘째형은 연세대학교 4번 타자를 치던 야구부 주장이었던 형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성장하였다.
1961년도 미스터 코리아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2등 준우승을 할 정도로 몸짱이었다.
당시 1등한 사람이 바로 몇 년전(2002년) 간암으로 별세한 [수사반장]의 유명탤런트 조경환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후배였다.
대한민국의 가요사에 라이벌구도가 1970년대 팬들사이에 남진팬 라훈아팬 두 그룹이 양산됐지만 기정사실은 이미 배호 VS 차중락이란 사전 라이벌 구도판이 실제했고 키보이스 중심 보컬로 美 8軍 부대에서 국내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시기 부산극장무대에 섰을적에 극장입구는 물론 부근의 건물의 유리창이 부셔지고 담벼락이 무너졌을 정도로 인산인해의 인파들이 붐볐다고 베이스기타를 치며 노래했던 차도균가수는 증언을 하였다.
오빠부대 원조는 바로 한국의 비틀즈란 닉네임을 얻었던 KEY BOYS(키보이스)그룹사운드였다.
車重樂이 활동했던 당시 가요계 남자가수 중심에는 <찐빵>이란 별명의 가수 최희준씨가 있었고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 정원이란 가수의 <허무한 마음> 남진의 <가슴아프게> 라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등 히트곡들의 음악템포가 느릿 느릿한 슬로우락이나 트로트(뽕짝)가 주로였지만 차중락은 본디 엘비스플레슬리나 폴앵커 낫킹콜 또는 남미 스페인어 가사로 불러대는 외국노래는 물론 이태리<칸쵸네>까지 소화해내는 천부적 소질이 있었다.
차중락에게 곡을 주었던 작곡가 이봉조 서영은등 차중락이 가졌던 최대한의 재능의 20%쯤 밖엔 제대로 장기를 활용하지 못했던 그 시대 음악의 流行 프레임속에 차중락을 가두어 놓았다고 봐야 된다.
노래를 부른 가수의 노랫말처럼 그 자신을 단명의 세계로 몰아갔지 않았을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흔히들 한국판 엘비스플레슬리로 남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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