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동주
합동 추모윤동주 시인

윤동주 시인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향년 27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15일
6명 방문

윤동주님을 추모합니다.

문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韓人村)을 형성했다.

명동학교(明東學校)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와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에 건너가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하였다.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염산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고종사촌형인 송몽규 (宋夢奎)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1990년대 후반 이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이곳은 원래 북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북간도 최대의 한인촌을 형성했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尹在玉)은 함경북도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에 거주하다가 1886년 길림성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독실한 장로교회 장로인 할아버지 윤하현 장로는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버지 윤영석(尹永錫)은 1910년 명동학교의 설립자인 김약연의 누이동생인 김용과 결혼하고 명동학교에서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19세기 말 조선인들이 간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 것은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였다. 그런데 간혹 미국의 청교도처럼 종교적인 이유에서 새로운 촌락 공동체를 건설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구세동(救世洞)·영생동(永生洞)·낙원동(樂園洞)·명신동(明信洞)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달리 유교를 신봉한 김약연은 처음에는 맹자의 정치철학에 입각하여 '신(信)·식(食)·병(兵)'의 이념을 실천하는 유교적인 이상촌을 세울 생각으로 1901년 서당인 규암재를 설립했다.

분향

1

추모합니다

분향함을 클릭하여 향을 꺼내세요.

헌화

1
송이

최근 헌화

218.*.*.171

국화꽃 헌화

꽃 더미를 클릭하세요

1회만 헌화 가능
공유:

추모글

0

아직 추모글이 없습니다.

첫 추모글을 작성해주세요

로그인 없이도 추모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분향
1
헌화
1
송이
추모글
0
방문자수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