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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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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1941년 2월 4일 - 2022년 5월 8일 (향년 81세)추모소 개설:2025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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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님을 추모합니다.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토지》를 집필한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이다. 1970년대 유신 독재에 저항하여 투옥됐다. 1980년부터 동서양 철학과 한국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생명 사상'을 제창하였다.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고 회고록 『흰 그늘의 길』과 저서 『김지하 사상전집』이 있다.

1941년 3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아버지 김맹모(金孟模)와 어머니 정금성(鄭琴星)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24세손이며,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에 대대로 살아온 집안이다. 증조부 김영배(金永培)가 암태도(岩泰島)에서 투전판에 얽힌 싸움으로 가족을 데리고 당시 동학 대두령이었던 사촌 형 김인배(金仁培)가 살고 있던 옛 고향 김제로 이주하였다. 이후 증조부는 사촌 형 조직에 들어가 갑오년 광양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영광 법성포로 피신하여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부는 법성포에서 거주하다가 목포에 정착하였다. 역전 시장에서 청과물 장사, 포목 장사서 기계 수선까지 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가 골패로 재산을 날렸다. 아버지 김맹모(金孟模)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전기기술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목포에서 전기 기술자로 활동하였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울 무렵에 공산주의를 접했다고 한다.

목포산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1954년 아버지를 따라 원주로 이주했다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유학,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진학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4·19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겪었고, 6·3사태 등을 접하면서 그는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66년 서울대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 동참하였다.

1969년 시 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필명은 '지하'(地下)였는데, 이것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 하였다.

1964년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70년 정치인과 재벌1 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질타한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이를 오적 필화 사건이라 한다. 19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하였고, 아들 김원보, 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 체포되고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해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해외 문인 및 지식인들과 연대해 김지하 시인에 대한 '사법 살인'을 막고자 나섰다.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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