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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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부춘마을에서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1989년~91년 가톨릭농민회 광주전남본부 회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에 농협 민주화 운동, 농업용수 수세 폐지 운동, 우리말 살리기 운동 등을 전개했다.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자녀들의 이름을 첫째는 민중을 뜻하는 도라지, 둘째는 통일을 의미하는 두산, 셋째는 민주화를 염원하며 민주화라고 지었다.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석, 시위 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4시간 가량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으며, 2015년 급성 신부전으로 2016년 9월 25일 향년 68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후 경찰의 부검 포기로 장례가 이뤄져, 2016년 11월 6일 화장되어 광주광역시 망월묘지공원의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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